(칼럼) N-Jobler(엔-잡러)의 페인팅(Painting) 찬가 (241104)

- 생각해보니 요트를 닦는 것이 더 많이 행복했던 것 같다.

 N-Jobler(엔-잡러)의 페인팅(Painting) 찬가

( N-Jobler : 두 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



꿈꾸는 세일러 김 판 주


11월이 되면서 한강 마리나에도 뜨거웠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

오랜만에 한강을 떠나 동네 마을과 가까운 교외로 나가서 한창 무르익어 가는 가을 단풍을 구경하고 왔다. 한강에서 볼 수 있는 푸른 물결과 새파란 하늘의 깨끗함도 좋지만, 찬란한 색조들의 잔치 같은 가을의 화려함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좌)노원 화랑대 철도 공원길 ,▲(중) 노원구 상계동 아파트 단지 내   ,▲(우)홍천 수타사 공작산 생태숲


이미 한강에는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서 요트를 타고 강물과 바람을 맞는 것은 고생스러운 계절이 되어버렸다. 마리나를 찾는 손님들도 뜸해졌다. 화려했던 한강 반포대교의 달빛무지개 분수 쇼도 10월 31일 부로 종료되었다.


▲ 반포대교 달빛무지기 분수쇼


아쉽지만 올해 마리나의 성수기 시즌이 끝난 것이다.
시즌이 끝나면 일부 요티(Yachtie)들은 내년 봄을 기약하면서 겨울 동안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떠난다. 잠시 동안 ‘N-잡러’로서 일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필자는 경기도 봉담의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페인트 도장(Painting) 일을 하게 되었다. 쉬운 말로 ‘뺑끼 노가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표현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N-잡러인 요티들은 그런 표현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일을 하면서 알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

페인팅 일을 하면서 보게 되는 건축공사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분야의 일들은 새삼스럽고 놀랍다.
먼저 현장의 어수선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복잡하고 무질서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18종 이상에 달하는 출근부와 작업일지를 보면 긴 일정에 맞춰서 분야별 공사업무가 체계적으로 하나하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 (좌)경기도 봉담읍 학원 건물 신축현장, ▲ (우)분야별 작업 일지, 18종류


각 층에 무질서하게 쌓여 있던 엄청난 양의 폐자재들이 어느 날 깨끗하게 치워지고 깨끗한 타일들이 깔린다. 휑하니 비어 있던 5층 건물의 외벽에 빛나는 창문들이 끼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3일이면 된다. 거친 내외벽에 미장이 말끔하게 끝나면 페인트 도장이 곧바로 이어진다.

얼마간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페인팅이 가장 돋보이고 중요한 공정이 아닐까(?) 싶다. 건축의 완성은 당연히 페인팅인 것 같다. 거칠고 어두운 단면들이 깔끔하고 말갛게 도장되고, 잘 보이지 않던 출입문들이 밝고 선명하게 보이며, 어수선하게 배열된 구조물들이 질서정연하게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인다.


▲ 페인팅 작업중인 필자와 옥상 페인팅 전, 후 모습 


영어의 페인팅(Painting)이란 말은 그림(Picture)이라는 말과도 같다. 영어 사전에 Picture는 선(lines)과 형태(shapes)로 그려지고(drawn) 채색된(painted)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페인팅(Painting)은 좀 더 좁은 의미로 유화나 수채화처럼 색칠된(painted) 그림(picture)을 뜻한다.
즉, 건축 공정에서 페인팅은 색을 칠해서 그림(예술품)으로서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가장 아름다운 과정과 같은 것이다.

또한, 페인팅의 기능은 무궁무진하다. 흠과 결의 보강, 벽과 지붕의 방수, 철제 구조물의 방청, 청결 유지, 안전사고 예방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일 것이다.

반면, 공사현장의 페인팅은 끝없는 보강 공정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받는다. 건축물은 최종 완공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긁히고 패이는 등 수많은 보강 페인팅 소요가 발생한다. 심지어 건축주의 요구로 특정 부분을 전면 재페인팅을 하기도 한다.
완공 후에도 하자 보수 등의 소요가 상당해서 현실적인 비용 지출 때문에 페인팅 담당자는 무척 괴로워(?)한다.
아마도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고통이 상당한 것으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페인팅을 하면서 요트를 생각했다. 아니, 생각이 났다. 요티로서 무슨 일을 하든지 요트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 (좌)골든블루마리나의 러셀러 호, ▲ (우)골든블루 마리나의 페어라인 호


건축이 거친 표면을 페인트를 칠하면서 완성한다면, 요트는 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로 만들어진 표면을 깨끗하게 닦아 내면서 관리한다. FRP에 다양한 색깔로 채색이 되어 있어도 깨끗하게 닦는 것에서부터 관리가 시작된다.
요트 페인팅은 표면의 마감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요트의 성능과 수명에 핵심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연료 효율성과 선체 유지 관리 용이성과 함께 요트를 재판매할 때 경제적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요트 페인팅은 건물 페인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당히 다른 결의 기술적 절차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여름, 마리나 업무 중에서 다소 힘든 일 중의 하나가 매일매일 요트를 닦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건축 현장에서 페인팅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요트를 닦는 것이 더 많이 행복했던 것 같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