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인과 바다, 그리고 요티 (250301)

- 바다는 사랑, 이별, 희망, 선망, 회귀, 모험이 넘치는 곳이다.

시인과 바다

(바다는 사랑, 이별, 희망, 선망, 회귀, 모험이 넘치는 곳)


꿈꾸는 세일러 김 판 주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예년보다 늦었다지만 2월 초에는 한강도 얼어붙었다. 3월을 코앞에 둔 지금도 제법 추운 날씨가 계속 되고 있다.

어서 봄이 왔으면 싶고, 봄이 올려나... 싶기도 하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중략)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중략)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 – 이성부)



이렇게 올해도 봄은 이 시인의 노래대로 '먼데서 이기고 돌아' 오고 있다.

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여러 상징들 중에 바다와 강은 시(詩)와 문학의 소재로 많이 노래 불러져 왔다.

김기림 시인은 '바다와 나비'라는 시에서 봄 바다를 나비에 견주어 노래했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중략)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3월' 봄바다의 생기가 느껴지면서도 아직은 차가운 '바닷물의 새파랗고 시린 초생달'이 감각되어진다.
김사인 시인은 봄바다라는 작품에서 '봄 냄새는 바다 내음'이라고 예찬했다.



봄은 남쪽으로부터 오고, 남쪽 끝 바다로부터 온다. ...(중략)... 바다 내음 향긋한 천지가 무릇 봄바다다. 물 맑은 봄바다에 두둥실 떠가는 저 배를 타고 미끈덩 풋것들로 환생하고 싶다.



김사인 시인의 노래처럼 봄은 '풋것들'이 새 생명으로 태어나고 '환생하는 남쪽 끝 바다로부터' 오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다소 춥지만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다.
바다를 꿈꾸는 요티들의 바다에도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멀리 남쪽으로부터...

많은 시인들이 바다와 강을 다양한 이미지로 노래해 왔다.
두려움, 차갑고 아픈 이별, 아련함, 사랑의 추억, 희망 ... 등등.

우리나라 최초의 시(詩)인 상대시가 중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에서 강은 이별의 상징으로 슬프게 묘사되었다.



公無渡河(공무도하) /그대 강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경도하) /그대 끝내 강을 건넜구려
墮河而死(타하이사) /물에 빠져 돌아가셨으니
當奈公何(당내공하) /그대여 어찌해야 하리오



진모영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모티브가 된 시이기도 하다. 인생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해준 영화였다.
여기서 강은 이별의 상징, 나아가 죽음의 상징으로 묘사되었다. 미지의 세계로 가는 두려운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바다와 강은 단연코 사랑을 노래하는 소재로 가장 많이 쓰였다.
몇 해 전 한국의 명시 100선에 선정된 ‘바다’를 노래한 시 몇 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바다 / 백석)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
...(중략)
사랑 노래 부르는 바다는 어디
...(중략)
건너서서 저편은 딴 나라이라
가고 싶은 그리운 바다는 어디

(바다 / 김소월)

바다를 바라보다가
바다를 잃어버렸습니다.
바닷가를 거닐며
바다를 찾고 있습니다.
...(중략)
사랑도 그리합니다.

(바다를 잃어버리고 / 이성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름다운 사랑이란
태양을 따라 도는 해바라기처럼
태풍에 휘몰아쳐 죽어 가는 파도처럼
단 하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이건만
...(중략)
파도여 네 검은 입 속에 날 삼켜다오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닷가에 서서
미친 듯 광란하는 바다 속으로
그녀에게 오래 미쳐 있던 나를 바치려 한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닷가에 서서 / 강해산)



나에게는 바다를 사랑에 비추어 노래한 시 중에 으뜸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이 있다. 나는 이 시를 사랑한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중략)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중략)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이처럼 우리 시의 바다에는 사랑과 선망이 가득차 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Tagore, Rabindranath / 1861 ~ 1941)도 바닷가에서라는 작품에서 아이들과 함께 친근하고 희망을 주는 바다를 엿보았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중략)
아이들이
소리치며 뛰놀고, 조개껍데기를 줍고 있습니다.
...(중략)

바다는 깔깔거리고 소스라쳐 바서지고
기슭은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사람과 배 송두리째 삼키는 파도도
아가 달래는 엄마처럼,
예쁜 노래를 불러 들려 줍니다.
바다는 아이들과 재미나게 놉니다.
...(중략)
아득한 나라 바닷가는 아이들의 큰 놀이텁니다 



타고르의 바다는 '사람과 배를 송두리째 삼키는 파도'라는 두려운 대상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큰 놀이터' 로서 희망에 찬 미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한편 바다는 탐험과 모험의 격정이 넘치는 곳이다.

영국의 계관시인(桂冠詩人) 메이스필드(John Masefield, 1878 ~ 1967)는 수 년 동안 콘웨이(Conway) 호를 타고 거친 바다를 항해하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후, 그리운 바다라는 작품에서 바다를 항해하는 기쁨과 희망을 예찬했다. 



내 다시 바다로 가리
큼직한 배 한 척과 지향할 별 한 떨기 있으면 그 뿐

흔들리는 흰 돛대와
물에 어린 회색 안개 동트는 새벽이면 그 뿐이니
내 다시 바다로 가리, 달리는 물결이 날 부르는 소리

바람 새파란 칼날 같은 갈매기와 고래의 길로
아름다운 꿈만 있으면 그 뿐이니.



이제 봄이다.
봄이 오면 우리 요티들은 '두둥실 두리둥실 배를 띄우고 물맑은 봄 바다에 강릉으로 달을 맞으려 떠날' 것이다. (사공의 노래 / 함효영)



바다는 사랑, 이별, 희망, 선망, 회귀, 모험이 넘치는 곳이다. 이 바다는 올해도 바다를 사랑하는 요티들의 가슴을 부풀게 할 것이다.




[꿈꾸는 세일러 김 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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