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대의 진정한 빈배 (240801)

시대의 진정한 '빈배’

- 빈 손 - 



빈 배

한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만약 빈 배가 와서 그의 작은 배와 부딪친다면
그가 비록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도
그는 성내지 않을 것이다.
허나 배안에 사람이 있으면 소리쳐
다른 곳으로 저어가라고 할 것이다.
한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칠 것이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치면서
​반드시 욕설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앞에서는 성을 내지 않다가 지금은 성내는 것은
​그 배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자기를 텅 비우고 세상을 노닌다면
그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이가 완전한 이다.
그의 배는 비어 있다.

-  장자의 ‘빈 배’ - 


▲ 작품 : 박이소 1994_무제 (사진 : 빈손)


장자의 빈 배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배 안에는 배를 저을 노도 없다. 그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장자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배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를 우리로 보이게끔 만들고 있는 모든것을 던져버리라는 것이다.
탐욕을 갖고 있다면 탐욕을 버리고, 성냄도 벗어 놓고.
슬픔을 갖고 있다면 슬픔을 버리라는 것이다.
집착을 갖고 있다면 그 집착마저 버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던 모든 것, 에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에고는 과거의 결정체이다.
과거로부터 알아온 것, 경험한 것, 일궈온 것 등
모든 과거의 산물을 모조리 버리라는 것이다.
에고를 버리면 그 자리에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사람이 자신을 모두 비우고 세상을 노닌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을 것인가!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놀고 즐기는 인간을 뜻하는 용어인데 인간의 본질을 놀고 즐긴다라는 점에서 파악하는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
문화사를 연구한 요한 하위징아에 의해 창출된 개념으로 ‘놀고 즐긴다’라는 말은 단순히 논다는 말이 아니라, 정신적인 창조 활동을 말한다. 그러니까 풍부한 상상의 세계에서 다양한 창조 활동을 전개하는 학문, 예술 등 인간의 전체적인 발전에 기여한다고 보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소설-드라마-영화-유튜브 등등을 만드는 것들이 이 분류에 포함된다,
반면에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도구의 인간을 뜻하는 용어로써 인간의 본질을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할 줄 아는 점에서 파악하는 인간관으로 베르그송에 의해서 창출된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유형, 무형의 도구를 만드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만든다고 보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민기.
며칠 사이 쏟아진 선생에 대한 추모글에는 서울대 미대 후배인 김병종 화백은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그의 노랫말에는 증오보다는 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이 먼저”였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우리의 정감어린 말들이 있다”고 회고했다. 또 “그의 세계를 이룬 것이 사회적 상상력과 서사만이 전부가 아니”며 선생은 “자연과 자유의 들녘에 선 음유시인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디 이 부분이 짚어질 수 있기를” 기원했다.


이 시대를 온몸으로 살다 간 아름다운 사람.
스스로를 누군가의 뒤에 있는 사람, 즉 '뒷것'으로 살기 바랐던 김민기.
그가 장자가 말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빈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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