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그럴 때 나는 ‘운주사’를 찾을 것이다(240703)


그럴 때 나는 ‘운주사’를 찾을 것이다.
(구름의 휴식처 – 운주사)


김일하-발로뛰는 문화유적 답사기



살다 보면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직장, 친구, 가족, 연인 등 주변 환경에서 받는 생활 속 스트레스로 가끔은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게 된다. 그럴 때면 되도록 멀리, 그것이 힘들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어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이곳 ‘운주사’를 찾을 것이다.



일상 속 생활과는 어느 정도 분리된 느낌을 주는 ‘절’이란 장소 그리고 걸으며 주변 자연환경도 보고, 사색하기도 좋은 곳이다. 그리 화려하지 않고 그렇다고 볼품없지도 않은 곳, 주변을 둘러보는 내내 마음은 편해진다. 특히 1,000년 시간을 묵묵히 버텨준 ‘운주사’ 탑과 부처는 친근하게 나를 맞아주는 듯 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한다.
누구라도 한번 두번 가다 보면 어느새 이 운주사의 매력에 흠뻑 빠질 거라 단언할 수 있다.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위치한 운주사는 구름이 쉬어가는 곳이라 해서 ‘운주(雲住)’라 하기도 하고, 배가 출발하는 듯하다 해서 ‘운주(運舟)’라 하기도 한다.

오래전 배낭 메고, 서울에서 땅끝(토말)까지 그리고 ‘보길도’까지는 배를 타고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서울에서부터 고속버스로 광주와 능주까지, 그런 후 ‘운주사’까지는 시골 버스를 타고 왔던 기억이 있다. 배낭에 쌀과 라면, 버너, 코펠 그리고 텐트..., 몇 되지 않는 짐이라도 배낭은 묵직했지만 하나도 무겁다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20대가 되고 혼자 처음 떠나는 여행이라 한편으로는 두려웠지만 그래도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아직도 그 기억만은 생생하다.
여행의 일착 목적지가 바로 이곳 ‘운주사’였다. ‘운주사’에 대해서는 TV를 통해 ‘천불천탑’이 있는 곳이라 얼핏 들어서 알고는 있었고, 마음으로는 언젠가 가보리라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나의 20대 첫 여행지가 된 것이다.
처음 상상만으로 도착한 운주사는 벅찬 감동보다는 충격이었다. 탑의 층수는 내가 알고 있던 탑의 모습이 아니었고,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불상도 그랬다. 불상과 탑의 자리 앉음새도 처음 접하는 생경한 모습이었다. 탑의 모형은 원형, 사각형, 항아리 모양을 하고 탑신에 새겨진 ‘X’자 ‘◇’마름모 모양, ‘III’ 모양은 옛것이라 하기보다는 현대의 어떤 존형에 가까웠다. 이 영구산 골 안에 그러한 탑과 불상이 200여 기가 있었으니, 처음 그때는 나에게는 감동보다 당혹감 그 자체였다.



여행의 첫날은 그렇게 ‘운주사’답사를 마치고 용강리 마을 앞 논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텐트를 쳤고, 밤하늘 많은 별과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보냈다.
생애 첫 여행의 출발과 텐트에서 보내는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운주사’는 내게 그런 장소이자 잊히지 않는 힐링 포인트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화순 하면 ‘운주사’가 떠올랐고, 이후로도 서너 번은 더 갔던 듯하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이곳을 다시 갔다. 이제는 입장료나 주차료도 없다. 사찰 내부는 공사로 먼지가 날리고 있었지만, 입구부터 반겨주는 키 높은 미루나무는 여전했다. 그리고 바로 옆 9층 석탑이 우뚝하니 서 있었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탐방객이나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이전에 비해 길과 데크는 잘 정비되어 있어, 이야기하며 둘이 함께 걷기가 좋게 되어있었다.



‘운주사’를 산책 삼아 돌아보려면, 우선 ‘일주문’을 지나 9층 탑에서부터 ‘보제루’ 앞 원형다층 석탑이 있는 중심부 쪽으로 가면 다양한 석탑과 불상을 볼 수 있다. 100(m) 정도 되는 구간에 ‘구층석탑’, ‘칠층석탑’, ‘쌍교차문칠층석탑’, ‘광배석불좌상’, ‘석조불감앞칠층석탑’, ‘석조불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우측 산언덕 아래는 ‘석불군’이 있고, 위로는 ‘오층거지석탑’과 ‘수직문칠층석탑’이 ( 현재 데크 및 탐방로 공사 중 ) 있다. 위에서 중심부 석탑과 불상을 내려다보는 경치는 볼만하다.



다음으로는 대웅전 내 3기의 석탑과 뒷산으로 난 탐방로를 오르다 보면 항아리를 쌓아 올린 듯 ‘발형다층석탑’이 우뚝 서 있고, 그 뒤로는 천년전 채석장이었던 곳에 여러 기의 불상이 좌선을 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방형의 석탑과 마애불이 있다. 그리고 마애불 위쪽이 ‘운주사’ 경내를 조망할 수 있는 ‘불사바위’가 있다.
대웅전을 나와 오른편 계단을 오르다 보면 ‘거북바위오층석탑’과 거북바위 교차문 칠층석탑이 바위를 기단 삼아 비스듬히 서 있고, 그 옆을 돌아내려 가면 바위 아래 불상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고개를 돌려 산 위를 보면 소나무 숲 사이로는 잘생긴 불상(‘시위불’)이 초록을 외투 삼아 꼿꼿하게 서 있으며, 그 바로 뒤가 ‘운주사’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와불이 고요히 누워있다.



2008년 4월 큰 산불이 이곳 ‘운주사’ 코앞까지 번졌으나 다행히 와불을 바로 앞에 두고 불길을 잡아서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와불은 1994년 인기를 끌었던 [퇴마록] 혼세편 1부 – ‘와불이 일어나면’의 모티브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이곳에 와불이 있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아왔으나, 부처가 열반에 든 모습의 와불과는 다른 형태의 와불이다 보니 실망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와불을 뒤로하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칠층석탑과 원형의 둥근 7개 바위가 소나무 아래 놓여 있다. 이 바위가 하늘의 북두칠성을 바닥에 표시해 놨다고 전해지는 ‘칠성바위’이다.
이렇게 전체를 보고 나면 대략 1~2시간 정도 소요 된다. 하지만 보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녔던 것 같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여기는 시간이 멈춘 듯 마음도 편해지는 곳이다.

영암 출신인 도선이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고, ‘선복(船腹)’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해 나머지 이곳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룻낮 하룻밤 사이 도력(道力)으로 조성해 놓았다고 한다. 또 절을 지을 때 신들이 회의를 열었다는 ‘중장(衆場)’터(일설에는 승려들이 장터를 이룰 만큼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함.)가 멀지 않고, 신들이 해를 묶어놓고 작업하였다는 ‘일봉암(日封巖)’도 가까운 곳에 솟아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렇게 ‘운주사’는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麻姑)’할미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네 차례의 발굴조사를 하였지만 정확한 창건 시대와 창건 세력, 조성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은 밝히지 못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에게 신비감이 더해주고 있다.

‘운주사’ 인근은 1976년 9월 30일에 준공된 나주호가 있고, 능주는 조선시대 왕도정치를 꿈꾸던 정암 조광조의 ‘적려유허지’가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순 고인돌공원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www.youtube.com/@you8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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