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산속 골마다 보물이더라!
(발로 뛰는 문화 유적 답사기)
2020년 3월 100대 명산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둘러 찾은 곳이 ‘두륜산’이다. ‘두륜산’은 학창 시절 남도 지역 답사 때 왔었는데, 그때 들렀던 곳이 이곳 '대흥사'였다. 거의 30년 만에 다시 오게 된 곳이다. 지금은 기억을 더듬어도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왔던 기억만은 분명히 있는 곳이다.
오늘 ‘두륜산’ 코스는 ‘대흥사’를 통과하여 ‘진불암’을 지나 ‘두륜봉’(630m), ‘가련봉’(703m), ‘노승봉’(685m) 등 3봉우리를 지나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로 넉넉하게 4시간 정도는 소요될 것이다.
산행 초반 그리 어렵지 않으나 정상 근처의 ‘데크’는 나에게는 죽음의 코스다. 춘삼월이라 봄을 맞으러 왔으나 사람은 없고 혼자 오르는 길에는 내 숨소리만 거칠게 들린다. 두륜봉 정상서 바라본 남도의 모습과 시원한 바람은 숨 가쁘게 뛰던 심장도 다시 제자리를 찾게 한다.
처음 오른 ‘두륜봉’ 정상에 서서 주변을 바라보는 맞은 가히 장쾌하다 할 수 있다. 저 멀리 남해의 윤슬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앞으로 바빠질 남녘의 논밭은 초록 풀들이 한창이다.
‘봄은 다도해의 푸른 해풍을 타고 갯벌을 지나 남도의 너른 육지에 달아서는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나 보다.’
건너편, 주봉인 ‘가련봉’은 볏짚을 쌓아 놓은 낟가리 같다가도 어찌 보면 장가 못 간 젊은이의 상투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륜봉’을 내려와 구름다리를 지나면 곧 ‘만일재’에 닿는다. ‘만일재’는 마산 무학산의 ‘서마지기’를 연상케 한다.
사람이 모여 식사라도 해서인지, 헬기장으로 사용한 탓인지 풀 대신 황토가 보이긴 해도 볕이 좋아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가련봉’ 등산로 또한 경사가 수직에 가까워 두 발, 두 손 모두 필요하다. 그것 또한 오르는 재미가 있다. 뒤돌아보면 금방 올라갔던 ‘두륜봉’이 절벽인 듯 노아의 방주처럼 우뚝하고, 멀리 남해는 여전히 푸르다.
최고봉인 ‘가련봉’은 왼편으로 ‘두륜봉’ 오른편으로는 ‘노승봉’이 양옆으로 시위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는 ‘고계봉’ 또한 한눈에 들어온다.
아쉽게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고계봉’ 전망대는 ‘두륜산’을 조망만 할 뿐 다른 곳으로 연결 산행은 못 하도록 막아두었다.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는 산 서울 남산, 강원 설악산, 통영 미륵산, 구미 금오산, 대구 팔공산, 남해창선 각산, 전북완주 대둔산, 밀양 천황산, 정읍 내장산, 거제 학동 파노라마케이블카, 춘천 삼악산, 하동 금오산, 강원 발왕산 케이블카 등이 있다. 무주 덕유산 설천봉은 곤돌라로 오를 수 있다. 대충 헤아려 보니 현재 33개가 운행 중이고 2~3개가 더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많았나! |
잠시 쉬고 하산을 위해 서서히 ‘노승봉’으로 향한다. 보통은 ‘노승봉’에서 ‘두륜봉’ 방향으로 산행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그래서 인지는 오르는 내내 동행하는 사람이 없다.
무서웠다. 산은 때로 즐거움을 주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가끔은 공포가 뒷목을 싸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능하면 산행은 둘이나 셋이 함께 하길 권한다. 난 친구가 없으니 여전히 혼자 다니고 있다.
각각의 봉우리에서 바라본 ‘대흥사’는 아담하며 정감 있다. 주변의 봉우리가 연이어 포근히 감싸서 인지 볕이 들어 그런지 한자리는 따스하다.
‘오심재’를 향해 내려가는 길 ‘북미륵암’을 알리는 표지를 보고 급히 걸음을 돌렸다. 별생각 없이 방문한 ‘북미륵암’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이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버틴 모습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그 옛날 석공의 수고로움이 느껴진다.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바위를 포함한 용화전 공사로 인해 대형 걸개그림으로 가려져 있기에 대강만 볼 수 있었으나, 구멍 사이로 핸드폰을 넣어 찍은 ‘마애여래좌상’의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본존은 너무 커서 전체가 찍히지 않았으나 옆의 공양 보살의 모습은 두고두고 볼만한 명작이 되었다. (지금은 공사가 끝나서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3층 탑 옆 ‘용화전’ 공사에 쓸 기둥이며 부재가 어지러이 있지만 삼층석탑의 위엄 앞에는 아무 일도 아닌 듯했다. ‘북미륵암’은 비록 작지만, 그 속에 품은 이야기는 무한하다.
그날 보지 못했지만 ‘북미륵암’ 오른쪽 산 능선에는 또 다른 삼층석탑이 있다고 한다. 미처 고개를 돌리지 못해 놓치고 말았으니 조만간 또 가고 싶은 생각에 날짜만 헤아려 보고 있다.
‘북미륵암’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이정표를 따라 다시 올라가니 바로 ‘만일암’터와 ‘천년수’가 있는 곳이다. ‘천년수’는 신하를 거느리듯 그 주변 나무가 ‘천년수’ 그늘 아래로 들어와 있어 수세며 생김새며 모두가 좋다.
바로 뒤 ‘만일암’ 암자 자리에는 5층 석탑이 꼿꼿이 서 있고 주춧돌로 쓰였을 석재 또한 여기저기 흩어져 세월의 무상함이 이와 같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같이 높은 곳에 이처럼 큰 나무가 천년동안 살아 있는 것도 대견하고, 산의 안쪽 깊은 골짜기마다 암자가 있은 것 또한 신기하다.
‘산’의 밖에서는 ‘산’ 만 보이더니, ‘산’의 안에 들어오니 ‘골짝’마다 ‘보물’이 가득하다.
이곳저곳 둘러보는 맛이 보물찾기 마냥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 보니 시간에 쫓기듯 ‘대흥사’로 내려왔다.
아직 ‘대흥사’ 구경은 시작도 안 했으니, 다만 “호국 사찰, 차(茶)의 성지’면서 2018년 7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만으로도 대흥사의 저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이야기, 동다송을 저술한 초의선사의 일지암과 임진왜란 때 고령의 나이로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휴정)가 이 절과 인연이 깊으니, 역사와 인문학이 공존하는 이곳이 바로 보물덩어리다.
그리고 그 절 앞에 여관 '유선관'이 있다.
우선 칼럼을 쓰면서 읽는 분들이 오해가 있을까 싶어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첫째, 미황사를 포함하여 앞으로 쓰게 될 글들은 글을 쓰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이미 다녀온 곳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이라 기억이 희미하여 장소나 위치 혹은 입장료 주차비 등이 다를 수 있으니 참고만 하세요. 둘째, 역사적 이야기나 글 들은 최대한 해당 자료를 찾아보고 쓰기는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기에 간혹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DM을 주시면 확인 후 수정 하겠습니다. 셋째, 산에 오르는 속도는 지극히 제 기준입니다. 느끼는 감정 또한 갱년기임을 고려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특정 종교에 믿음이나 신념이 있는 것이 아니데, 유독 사찰만 다닌다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이름난 산에는 반드시 유명 사찰이 있기에 들러 보고 내력을 살펴보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표현이 잘못되어 오해가 있다면 그것 또한 이후 관심 가지고 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