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키퍼매뉴얼 발행자 ‘이지세일링’님 인터뷰
국민 생활과 의식 수준이 변화되면서 요트와 세일링 활동은 더 이상 특정 사람의 전유물이라 인식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부족한 사회적 인프라는 일상생활에서 세일링과의 거리를 두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또 어렵게 용기를 내어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없어, 항해와 세일링은 말 그대로 ‘도전’을 해야 하는 장르가 되어 가고 있는지 모른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선행 사람의 경험과 사례를 접하는 것이 최근의 일반적 학습 방법일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요트나 세일링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우려 한다면 그 방법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는 않다.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보라 해봐야 판매 목적의 선박 소개, 선박 구매에 대한 경험, 요트 대회 참가 영상이나 딜리버리 정도의 초기 경험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바다 환경과 선박 특징에 맞는 세부 정보는 거의 없다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Alessia Lee – 필명.筆名: 이지세일링(Easy sailing)’ 주로 이탈리아에서 세일링요트와 파워요트 디자인하고 있으며, 발틱 요트 Baltic Yacht, 독일 와이요트 Y Yachts, 이탈리아비요트 B-yachts 디자인에 참여하고 자신의 항해 경험과 ‘스키퍼’로서의 성장 과정에 대한 내용을 뉴스레터 '스키퍼매뉴얼’과 책 ‘BUMBLING ON HORIZONS’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이지세일링’ 그녀의 요트와 세일링에 대한 경험 그리고 ‘스키퍼.Skipper’로서 성장 단계별 솔직한 감정 표현은 처음 요트를 접하는 사람이나 먼바다 항해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접해보라 권하고 싶다.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세일러’들에게 소개를 드리고자 하며, 더불어 이를 통해 정보 부족, 용기 부족으로 아직 세일링 세상에 들어오지 못한 분들에게는 그 시작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인터뷰, 첫 번째 이야기 (Alessia Lee : 필명 ‘이지세일링-Easy sailing’)
▶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2009년부터 주로 이탈리아를 베이스로 세일링 요트와 파워요트를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커리어 초기에는 밀라노와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그 이후에는 프리랜서로 100피트 전후 세일링 요트의 익스테리어 디자인과 인테리어 레이아웃을 주로 맡아 디자인합니다. 비교적 최근 진수한 프로젝트로 핀란드 발틱 요트Baltic Yachts 142피트 카노바Canova, 독일 와이 요트YYachts 70피트 플래그쉽 벨라Bella와 이탈리아 비 요트B-Yachts 34피트 데이세일러가 있습니다. 소위 럭셔리 요트의 세계에서 일을 하지만, 업계 사람들과 달리 세일러로서 부족한 점이 많아 공부를 하다 보니 요트 관련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 필명 ‘이지세일링’ 의미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지세일링(Easy sailing)'은 세일링 요트의 기동을 단순화하고 자동화시킨 데크 시스템을 가리키는 기술 용어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전동윈치나 셀프 태킹(*) 시스템도 이지세일링 시스템의 예죠. 1990년대부터 일부 수퍼요트에 도입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프로덕션(*) 요트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복잡한 요트 조작을 단순화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세일링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좋아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편안한 세일링’으로 읽히는 점도 마음에 들구요.
* 셀프 태킹: 태킹 시 집시트를 조정할 필요 없이 집세일이 스스로 반대 방향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시스템.
* 프로덕션 요트: 보편적인 디자인으로 대량생산되는 요트로, 커스텀 요트와 반대의 개념.
▶ 글을 전문으로 써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잡지와 사보 등에 몇 차례 기고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매번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글을 마무리할 때마다 전문적으로 글 쓰시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뉴스레터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재미있어 하는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글쓰기가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고민하고 끙끙대는 괴로운 시간은 피할 수 없지만, 글이 완성되었을 때의 기쁨이 매번 산통을 잊게 하는 것 같습니다.
▶ 처음 요트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있다면?
산업디자인과 재학 중에 밀라노의 요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요트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는데도 운 좋게 당대 가장 유명한 수퍼요트 디자인 스튜디오 중 한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졸업 후 정식으로 역할과 책임을 맡으며 스튜디오 외부 사람들과 교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당시 요트 지식에 대한 저의 부족함을 느낀 사장이 육지에서 100해리 떨어진 무인도로 2주간 딩기요트 합숙 훈련을 보내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배를 탄 사람이 아니면 첫 요트 경험 직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이렇게 명확히 둘로 나뉜다고 하던데 다행히 저는 전자였어요.
▲ 사진 : 스튜디오 브렌타(Brenta)에서 근무 시설 : (좌) 모형은 월리요트의 시작인 월리게이터 1, 2
▶ 요트 항해에서 느끼는 매력이 있다면?
어디에서 어떤 요트를 타느냐에 따라 참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름철 지중해에서 크루즈를 하면 육상교통이 닿지 않는 아름다운 바다를 최대한 즐기며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큰 파도가 잦지 않기 때문에 바람과 세일 트림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세일링 할 수 있는 환경도 좋구요. 태평양 동쪽(미 대륙 연안) 바다는 해양생물들과 만날 기회가 정말 많았습니다. 고래떼와 함께 항해 하고, 낚시줄에 어린애 만한 상어가 올라오고, 마리나에는 물개들과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습니다. 한국에 머물 땐 주로 남해에서 배를 타는데, 여객선 스케줄이나 숙소 예약에 구애받지 않고 주위 섬에 다녀온다거나 인파로 미어터지는 해변 앞에 닻 내리고 여유롭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좋더군요. 이 셋을 종합하면 '자유롭게 자연에 스며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 사진 : 항해와 마리나에서 만나는 해양 생물
▶ 발행 중인 ‘스키퍼 매뉴얼’에 대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코로나로 밀라노가 봉쇄되어 집에 혼자 세 달 가까이 갇혀 지내던 시기, 세일링 요트의 리깅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했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책 한 권을 선택해서 마치 요트를 전혀 모르는 친구에게 설명해 주듯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기본부터 설명할 논리를 찾으며 글을 쓰다 보니, 몇 번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던 부분들을 쉽게 기억할 수 있게 되더군요. 더불어 같은 관심사를 가진 독자들도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2022년 여름, 저는 처음으로 2주간의 크루즈에서 스키퍼 역할을 맡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스키퍼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역량 있는 스키퍼가 알아야 할 내용'을 주제로, 리깅 블로그의 성공 경험을 살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블로그를 발견해도 즐겨찾기 추가만 하고 잊어버리던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엔 뉴스레터 형식을 시도했어요. 독자들이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시간인 일요일 오전 9시, 주제와 상황에 따라 매주 발행하기도, 격주로 발행하기도 하다 보니 벌써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네요.
초반에는 탑-티어 오프쇼어 세일러 장카를로 페도테(Giancarlo Pedote)가 지금처럼 유명한 스키퍼가 되기 전에 쓴 동명의 책 'Il manuale dello skipper(스키퍼 매뉴얼)'을 중심으로 구성했어요. 평소 배에 놔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던 콘사이스 형식의 책이었죠. 검증된 스키퍼의 항해에 대한 A부터 Z까지의 통찰, 고민, 그리고 노하우를 담고 있어서 내가 스키퍼로서 알아야 할 주제를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데 딱 좋았거든요. 언젠가 완독하겠다고 마음만 먹고는 금세 잊곤 했지만, 뉴스레터라는 정기 발행 형식을 통해서라면 독자들과 함께 꾸준히 읽어나가며 결국 완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매주 책에서 다룬 주제로 토론의 장을 열어 독자들과 지식을 나누고, 집단 지성을 구축하겠다는 거창한 꿈도 꾸었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여율 저조로 인해 집단 지성 구축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결국 뉴스레터는 책에서 다룬 주제를 충실히 전달하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저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출항해 난생처음 태평양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자친구가 미 서부 해안과 바하 캘리포니아를 따라 내려가 멕시코에 가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혼자라도 가겠다는 게 아무래도 불안해서 항해 초반부는 함께 항해해 주기로 했습니다. 자신에 차서 내가 도와주겠다며 등판은 했는데, 처음 타 보는 선종, 처음 항해해 보는 바다, 처음 겪는 미국 시스템으로 인해 고난의 에피소드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생이 컸던 만큼 재미있는 일도 많이 벌어졌어요. 독자들과 함께 낄낄거리고픈 개그 욕구가 샘솟더군요. 남이 쓴 책 본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단조로운 뉴스레터 글쓰기가 지루해질 때쯤, 그래서 제 항해 이야기를 함께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 사진 : (좌)호라이즌스호 . 캐나다-멕시코 항해 . 타야나 37피트 / (우)항해 중 만난 혹등고래
거친 북미 태평양의 겨울 바다나 멕시코 허리케인 시즌을 피해 쉬는 동안에는 항해 중에 부족하다고 느꼈던 주제들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서 뉴스레터로 발행했죠. 그리고 캐나다-멕시코 항해를 완전히 마친 지금은 지난 항해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내용을 담아 발송하고 있습니다. 뉴스레터를 시작한지 2년 넘게 지나 이제야 저의 진정한 '스키퍼 매뉴얼'을 쓰고 있는 느낌이예요. 그래도 내용이 너무 전문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조심하고 있습니다. 리깅 블로그처럼, 전혀 요트 경험이 없는 가상의 친구가 이해할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현재 몇 회 정도 발간하셨나요?
2022년과 함께 시작한 뉴스레터의 총 발행부수는 97회입니다. 다만, 비공개처리한 글들이 있어 뉴스레터 아카이브 페이지(https://maily.so/easysailing)에 방문하면 현재 47개의 지난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영상이 아닌 ‘글’ 을 통해 항해기를 전달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있는지요.
평소 유튜브보다 글을 더 즐겨 소비하는 편이라서 자연스레 글로 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고, 재미있는 글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커요. 긴 글을 읽을 정도로 충분한 관심과 인내심을 가진 독자들이 모이다 보니, 유튜브에서 종종 보이는 악성 댓글 등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도 장점입니다.
유튜브의 막강한 미디어 파워를 인지하고는 있습니다. 수년 전에 전혀 다른 주제로 영상을 만들어 올려본 적이 있는데 조회수와 댓글 참여가 엄청나더군요. 다만, 영상을 촬영하려면 그 현장을 온전히 즐길 수 없고, 영상 편집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글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구독자는 주로 어떤 분들인지?
저 역시 구독자들이 주로 어떤 분들인지 궁금합니다. 글 조회수는 높은 반면 댓글이나 이메일로 소통하는 독자는 많지 않아 파악이 쉽지 않거든요. 제 글쓰기 스타일이 그동안 독자들의 참여를 주저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되더군요. 잘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독자들이 끼어들 틈을 남겨두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요. 제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얘기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게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좋은 생각 있으신가요?
▶ 독자분들과는 소통을 자주 하시는 편인가요?
대부분 기자님처럼 읽기만 하십니다. 그래서 지난 가을, 항해를 위해 다시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에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봤어요. 대나무숲에 홀로 외치는 느낌으로 남해에서 북토크와 파티를 연다고 뉴스레터에 공지했는데, 차, 캠핑카, 요트 등을 타고 이 먼 남해까지 많은 분이 와 주셨어요. 이렇게 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셨다는 사실에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해외에서 구매한 요트를 홀로 한국에 옮겨오는 먼바다 항해에 제 뉴스레터를 인쇄해 가져가 참고하셨다는 분도 계셨고, SNS나 다른 온라인 서비스 디톡스 중이지만 제 뉴스레터만은 매주 기다린다는 분도 만났어요. 뉴스레터 덕에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의 인연이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한국에 자리를 잡고 정착할 예정이니, 재미있는 읽을거리 뿐 아니라 함께 즐길거리도 만들어 더 자주 만나고 싶어요.
▶ 뉴스레터 ‘스키퍼 매뉴얼’ 글 중 요트 및 항해 관련 용어가 무척 정확하게 표현된다는 느낌입니다. 요트나 항해 및 관련 용어 관련 공부를 하시는 건가요?
요트 입문의 문턱 중 하나가 용어죠. 배 위에서만 쓰이는 낯선 단어들이 많습니다. 관련업에 종사하니 자연스레 알고는 있지만 한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잘못된 발음이 널리 쓰이며 굳어진 경우 회피와 타협 중에 늘 고민해요. 헬름(helm)이나 클로스홀드(close-hauled) 등은 자주 쓰이기에 특히 괴로워요.
▲사진 : ‘이지세일링’ 항해 일상 모습
스튜디오 인턴 시절, 처음 요트 용어를 익히던 때 일어난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얘기해 드릴께요:
매일 그야말로 멀미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회사에서 남들이 하는 말을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당시엔 이탈리아어도 완벽한 게 아니었는데 모르는 세일링 용어가 워낙 많았습니다.
일단 귀에 들어오는 단어들을 슬쩍 한 귀퉁이에 적어 놨다가 집에서 찾아보곤 했습니다. 대체로 세일링 용어는 일반 사전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 서핑을 해서 찾아냈죠.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사장 두 명 다 자주 쓰는 '용어'였는데 그 빈도로 보아 매우 중요한 용어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인쿨라레(inculare)였는데요,
-re로 끝나는 단어의 형태로 보아 이탈리아어 동사이긴 한데 이게 뭘까 내내 궁금하던 것이 언제 풀렸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영어의 F***와 동류의 의미이되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묘사하는 단어로, 그냥 말 걸걸한 두 사장이 말끝마다 강도 높은 욕을 붙였던 것이죠. (궁금해도 구글링 하지 마세요!)
▶ 항해에 관한 많은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있는데, 다음 회차 내용은 어떻게 결정하는지요?
항해기를 연재하는 동안은 항해 수첩의 메모를 바탕으로, 일어난 일들을 시간순으로 글을 써 나가고, 특정 주제를 바탕으로 쓸 때는 보통 기획 단계에서 어떤 내용들을 다룰 것인지 대략의 목차를 만들고 시작합니다. 긴 항해를 마친 직후인 지금, 앞으로 몇 주간의 내용은 이번 항해와 관련된 배 이야기로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아직 요트 경험이 없는 구독자들은 그동안 항해기를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같아, '다 같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요트 이야기' 정도의 컨셉으로 글을 써 보려고 해요.
이제 3년이 지나고 보니 큰 틀에서 '스키퍼 매뉴얼' 뉴스레터가, 시작할 때의 목표대로 '역량 있는 스키퍼가 알아야 할' 내용이라는 일관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해요. 정보성 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재미로 쓰기 시작한 항해기에도 저와 선주의 실수에서 타산지석으로 배울 내용, 항해의 경험에서 깨달은 내용들이 녹아 있어 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음 주제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 틀 안에서 소재를 찾게 될 것 같습니다.
▶ 주변에 요트 타시는 분이 많이 있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로 그런가요? 아니면 어떠한 커뮤니티를 활용하여 매번 함께 할 분을 찾으시는 건가요?
가장 보편적인 경우는 세일링을 처음 배운 학교에서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이용하면서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것인 듯해요. 그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타기 시작하며 다른 기회들이 만들어집니다. 새로운 마리나에 계류했다가 옆 배와 친구가 되는 경우, 친구 초대로 승선한 새로운 배의 크루들과 친해져 그 사람들이 초대하는 또다른 배에 승선하게 되는 경우 등.
이탈리아 같은 경우 요트 잡지 뒷 페이지에 '크루 찾음' 혹은 '배 탈 기회 찾음' 같은 광고가 올라오기도 해요. 요즈음엔 온라인으로 선주와 크루를 연결해 주는 곳도 많아요. 다만 서로 최소한의 레퍼런스가 있는 경우가 안전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과 배를 타다 보면 자연스레 잘 맞는 사람들과 그룹이 형성됩니다. 성격이 다른 사람과 장기간 배에서 함께 생활하는 일은 정말 괴롭기 때문에, 한 번 이 그룹이 형성되면 오랜 시간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발행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가장 아끼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나만 골라 주세요.
스키퍼 매뉴얼은 크게 정보성 글 '스키퍼 매뉴얼'과 항해 에피소드 '어리버리 항해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리버리 항해기는 항해 사이 쉬는 기간 동안 항해 수첩의 메모를 바탕으로 지난 일들을 복기해서 썼습니다. 그런데, 캐나다-멕시코 항해의 마지막 구간은 '어리버리 로그'라는 이름으로, 그 주에 일어난 일을 현장 뉴스 느낌으로 써서 바로 발송했어요. 그래서 글은 좀 미흡하지만, 사건의 한 가운데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생동감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두 달 가까이 항구에 묶여 있다가 출항하던 날 밤 야간 당번을 서며 콕핏에서 쓴 글이에요. ‘어리버리 로그: 별이 빛나는 밤’에 편입니다.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던 항해 공포증을 극복하고 배도 안전하게 정비한 상태로 마음 편하게 바다로 나섰던 날 밤, 온화한 바다와 부드러운 바람, 아름다운 달빛에 취하듯 한 상태에서 쓴 글이예요. 너무나 오랜만에 항해의 즐거움을 느꼈고 세일러로서 한 걸음 발전한 듯한 행복에 도취 되어 쓴 글이라 지금 읽어도 그날 밤의 황홀한 무드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링크 : 어리버리 로그 ‘별이빛나는 밤’)
▶ ‘뉴스레터’ 발간을 통한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최근 좋아하는 작가의 뉴스레터를 야심차게 구독했는데, 번번이 읽기를 미루는 바람에 메일함에 자꾸 쌓이고 있습니다. 스키퍼 매뉴얼 뉴스레터를 발송하면 그날은 조회수를 종종 모니터링하는데, 구독자 네 분 중 한 분이 당일 읽어 주시더군요. 그 유명 작가의 필력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제 글을 사랑해 주시는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시작할 때의 목표는 저 자신을 위한 공부였는데, 이제 매주 일요일 아침 스키퍼 매뉴얼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글을 쓰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한 편 한 편 발송하다 책으로 묶을만한 내용이 모이면 어리버리 항해기의 경우처럼 책으로 만드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 앞으로 ‘뉴스레터’를 통해 요트 분야 다뤄 보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운전하는 사람이 자동차의 구성이나 동작 원리를 꼭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트는 좀 달라요. 배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훨씬 더 안전하고 편하게 항해할 수 있습니다. 바다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 돌발 상황이 생기면 당황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배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스키퍼가 알아두면 좋은 요트의 기술적인 내용들을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풀어내 보려고 합니다. 스키퍼 매뉴얼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요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이고 항해 하면서 몸소 부딪히다 보면 점점 더 좋은 스키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 책을 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개 부탁 드립니다.
뉴스레터에 연재했던 어리버리 항해기 중 앞부분을 다듬어 Bumbling On Horizons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항해 초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주로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생각에 성급하게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 아스토리아 구간까지의 항해 이야기만을 묶어 책을 냈습니다. 그러나 어리버리 세일러들의 좌충우돌 혼비백산은 시간이 지나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어요. 항해를 진행하면서 상황이 점점 익숙해지며 편안해질 것이라는 기대와 반대로 멕시코까지 전 구간을 항해하는 내내 고난의 스토리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스토리아 이후의 항해 이야기까지 모두 담아 책을 새롭게 출간할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세일링 이야기를 읽을 만한 독자층이 더 많을 거라는 단편적인 생각에서 ‘Bumbling On Horizons’는 영문으로 출간했는데, 이번에는 원문인 한글 책 먼저 완성하려고 합니다.
▲ 사진 (좌) 출간된 ‘Bumbling On Horizons’ / (우) 프랑스 코르시카 섬에 닻을 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