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리,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

( 빈  손 )

몇 해 전 일이다. 셋이서 소주를 한잔 마시고, 작업실로 들어와
이차 겸 뒷풀이로 맥주잔을 놓고 늘 버릇처럼
오디오의 버튼을 누르고 데크에 씨디를 넣었다.

그 음반은 내가 김소희의 <구음>만큼이나 좋아해서 아끼고 숨기고 귀히 간직하고
싶은 곡이었고, 그날 ‘K’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이자 시였다.
그즈음 ‘K’는 많은 시련을 안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기도 했다.
스피커에선 기타 소리와 함께 이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김민기 - 봉우리 [노래/가사] <전략> ....​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 <후략>

이 곡이 흐르던 순간, 술잔을 마주하고 듣던 K는 고개 숙이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어깨는 마치 파도가 치듯 격정적으로 들썩이며 울음소리는 더욱 커지고 하염 없는 눈물은 탁자 위에 뚝뚝 떨어지고, 억누를 수 없었던 화산 같은 심연의 마그마가 그렇게 봉우리란 곡조와 노랫말로 분출되었다.

그렇게 곡이 끝나고도 이어지는 그의 슬픔을 망연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보다 못해 건너가 그의 가슴을 오래 안아 주었다. 아니 내 안의 깊은 아픔까지 그득 안았다. 아니 그처럼 더욱 통렬하게 그보다 더 오래오래 울고 싶었다.
그는 몇 권에 시집을 낸 시인이었고, 군대에서 숨진 죽엄을 찍는 수사관이기도 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가끔 이 노래를 다시 들을 때마다 그가 떠오른다.
지금쯤은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삶의 봉우리를 향해 가쁜 숨을 몰아가며 오르고 있을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