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터뷰) 스키퍼매뉴얼 두 번째 이야기, 쿨헤드!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

-요트와 항해 경험을 나누며 공감하는, 스키퍼매뉴얼 두 번째 이야기


스키퍼 매뉴얼 (두 번째 이야기)
'쿨헤드(cool head)'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 세일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Alessia Lee : 필명 ‘이지세일링-Easy sailing’) 

‘Alessia Lee – 필명.筆名: 이지세일링(Easy sailing)’ 주로 이탈리아에서 세일링요트와 파워요트 디자인하고 있으며, 발틱 요트 Baltic Yacht, 독일 와이요트 Y Yachts, 이탈리아비요트 B-yachts 디자인에 참여하고 자신의 항해 경험과 ‘스키퍼’로서의 성장 과정에 대한 내용을 뉴스레터 '스키퍼매뉴얼’과 책 ‘BUMBLING ON HORIZONS’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 링크 : 스키퍼 매뉴얼 > 

▲ 사진 :  (좌) 첫 직장 스튜디오 브렌타(Brenta) / (우) Super yachts - Logica 147



▶ 지금까지 ‘이지세일링’님이 경험한 항해 코스는 어떤 곳이 있을까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와 유럽의 호수들에서 세일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남해안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를 항해했고, 최근 2년간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멕시코 중부 사이 태평양 연안을 항해했어요.

▶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저는 지중해에서 처음 세일링 요트에 발을 들였고, 점차 경험이 쌓이고 항해에 자신감이 붙어 배와 다른 크루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스키퍼 역할을 맡게 될 때까지 모든 세일링 경험이 지중해라는 환경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 사진 : 이지세일링-이탈리아 리구리아 해안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난생처음 태평양이라는, 전혀 다른 바다를 항해하게 되면서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이 초기화되는 듯한 패닉에 빠졌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공포에 질리는 일이 반복되자, 과연 내가 항해를 즐기는 사람인지조차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현실을 깨닫자, 그간 저를 괴롭히던 항해 공포증이 투정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잘 모르는 선종, 잘 모르는 바다, 어리버리 두 명으로 이루어진 크루 구성..., 그동안 감싸고 있던 두려움이란 요소로부터 마음의 문을 열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일러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멕시코 북부의 엔세나다에서 종착지 산블라스까지 구간은 바다 자체의 광활한 아름다움보다, 뜨고 지는 해와 달을 연속 해 보며 느끼던 성취감으로 평생 잊지 못할 바다로 남을 것 같습니다.


▶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 줄 항해 코스가 있다면 소개 부탁 드립니다.
     ( 생애 첫 먼바다를 항해하려 한다면 추천할 곳이 있나요? )
한국에서 출발해서 먼바다에 나간 적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출발지가 자유롭다면 지중해가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조수간만의 차가 거의 없고, 상대적으로 바다가 얌전한 데에다 피항할 수 있는 곳이 너무 멀지 않고 마린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세일러들에게 좀 더 인간적인 환경을 제공합니다. 물론 지중해라고 해서 항상 바다가 온화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최근 지중해 겨울 바다는 항해에 안전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태평양과 비교할 때 바다 상황이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하게 바뀌는 성향도 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태평양에서 항해를 하며 지중해의 해양 환경이 얼마나 좋았는지 깨달았습니다. 아무래도 고생보다 즐거움이 큰 세일링을 위해서는 지중해가 더 맞는 것 같아요.


▶ 개인적으로 항해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 번은 독일 사람들 세일링에 합류한 적이 있습니다. 새 주인을 만난 배를 클라이언트의 여름 휴가지 사르데냐로 옮기는 200해리 정도의 여정이었죠. 새벽에 출항해서 아침 점심도 쫄쫄 굶으며 종일 항해 했습니다. 우리가 옮기는 배는 근해 세일링용이라 거친 바다에 적합하지 않은데, 오후부터 바람이 너무 심하고 파도가 높아졌습니다. 선장은 안전을 위해 코르시카 섬 쪽으로 근접 항해를 결정했습니다.
섬에 가까이 붙자 파도와 바람이 많이 잦아들었습니다. 다들 한숨을 돌리며 해안을 따라 남하하던 중,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고무보트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사람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장은 고무보트에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 생각하고 가까이 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야- 이런 게 바로 씨맨십이로구나!' 다들 배고프고 피곤한 상태였는데 고민 없이 바로 뱃머리를 돌리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무보트 바닥에는 전라의 남녀가 겹쳐 누워 있었습니다. 남자는 우리를 보고 화를 내며 뭐라 했던 것 같아요. 황급히 뱃머리를 돌린 독일인 선장은 기가 막혀 하며 "프랑스 놈들.."하고 투덜거렸습니다. 독일 크루들의 씨맨십이 엉뚱하게도 프랑스 사람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결과로 돌아오고 말았던 거죠. 같은 유럽이라도 문화 차이가 큰데, 여러 나라 사람이 지중해에서 세일링을 즐기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이었습니다. 프랑스 선장이었다면 바로 앞까지 가기 전에 상황을 짐작하고 돌아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사진 : 이지세일링 (님) 항해 일상 모습 

▶ 세일러가 갖추어야 할 자질 하나를 꼽는다면?
뉴스레터에서 여러번 '쿨헤드(cool head)'라고 표현한,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 세일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이 혼비백산하면 아는 것도 기억이 나지 않고 엉뚱한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니까요. 바다 위 상황은 예측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고, 배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이때 평정을 유지해야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베테랑 선장이 배 옮기는 항해에 합류했습니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200여 마일 항해하는 거리라 좀 느긋한 여정이었고, 선장은 친구들을 초대했습니다. 저녁으로 선장 특기인 리조또를 만드느라 갤리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엔진이 멈춰 버렸습니다. 이 깜깜한 밤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엔진 고장이라니, 순간 침묵과 긴장이 흘렀습니다. 선장은 일단 가스 불을 끄더니, "그럼 세일 먼저 올려놓고 생각해 보자"라며 데크로 올라갔습니다. 세일로 일단 배가 앞으로 가게 해 놓은 뒤 엔진룸을 열어 엔진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남이 어떻게 정비했는지 모를 배를 옮길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입니다.
엔진이 멈추자, 저는 이 배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더군요. 리깅은 과연 제대로 되어 있을지, 물 들어오는 곳은 없는 게 맞는지, 이 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니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잠시도 당황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더군요. 엔진은 항해가 끝날 때까지 고치지 못했고, 우리는 다음 날 새벽 세 시, 어둠 속에 세일로 입항해야 했지만, 선장의 덤덤한 태도 덕에 겁먹지 않고 배를 무사히 정박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냉정을 잃지 않는 ‘쿨헤드’야말로 세일러가 갖춰야 할 최고의 자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항해라는 꿈을 꾸고는 있지만 용기가 없거나 기회를 만들지 못해 아직 시작하지 못한 분이 많습니다. 첫 항해 시작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로망과는 별개로, 실제로 배를 타 봐야 본인이 정말 배 타는 것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막상 해 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수도 있어요. 반대로 세일링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요. 먼바다 모험을 하는 항해와 가까운 바다를 즐기는 항해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 세일링 요트에 '모험'의 이미지가 많이 덧씌워져 있지만 저처럼 ‘이지 세일링’을 선호하는 사람도 배 타는 걸 즐기고 취미로 삼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기보다는, 가볍게 배 탈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처음부터 요트 면허 코스에 부담스런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 보다는 짧은 크루즈나 데이 세일링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요트 문화를 확산시키려 하면, 어떤 것이 선행되어야 할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보통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요트 수요가 생긴다고 하는데요, 그렇지 못한 케이스가 일본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부자들조차 일을 열심히 하는 문화 때문에 여가 시간 부족으로 요트 문화가 크게 확산되지 못했다고 해요.
한국도 휴가를 자유롭고 넉넉하게 쓸 수 있다면 요트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어업 종사자들과 바다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세일링 요트가 닻 내리기 좋을만한 만에는 빠짐없이 '빠지'라고 부르는 무허가 수상 시설물이 떠있고, 해안에서 떨어진 곳에 대형 어망이 설치되었는데 전자해도에 표시되지 않은 경우도 수차례 목격했습니다. 이런 위험한 시설물에 적절한 표시등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 세일링 요트의 안전을 위협합니다.
어업으로 인한 해양 오염 문제도 심각해서 바다에 떠다니던 로프 등이 프로펠러에 엉키면서 요트가 동력을 잃거나 닻이 해저의 폐그물에 걸려 수거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합니다. 스티로폼 부이 때문에 육지에서 먼 바다 섬에 가도 흰색 찌꺼기들이 바위에 빼곡히 끼어 있는 모습 역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쾌적하고 안전한 바다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요트 문화 확산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 사진 :한국 남해 항해 중 만남 해변의 쓰레기 (상)나쁜예, (하)좋은예 

▶ 바다 건너 요트를 구매하고자 하는 초보 스키퍼에게 조언 부탁 드립니다.
검색해 보니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2014년에 치키 라피키(Cheeki Rafiki)라는 이름의 베네토 퍼스트 40.7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베테랑 스키퍼를 포함한 네 명이 영국에서 카리브해로 배를 옮기던 중이었는데, 선체에 물이 들어온다는 조난신고를 마지막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결국 킬이 빠진 상태로 뒤집힌 선체가 발견되었고, 구명정은 선체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킬볼트(keel bolt)가 파손되어 킬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 배가 빠르게 뒤집히기 때문에 선원들이 대피할 시간이 없었을 거예요. 이 배의 실종 직후부터 선체 발견까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음 소식을 기다리다가, 킬 없이 뒤집혀 있는 배의 사진을 보고 충격이 컸어요.
세월호가 가라앉는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들에게 남은 트라우마와 비슷한 게 생긴 것 같아요.
배는 수명이 매우 길기 때문에 때로는 100년이 넘은 요트도 건재를 과시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월을 견딜 만큼 관리가 잘 되어 왔을 때만 가능한 일이에요. 선령이 오래되지 않았더라도 주인이 자주 바뀐 배는 잘못된 수리나 개조 이력을 파악하지 못할 위험이 커집니다. 차터를 돌리는 배는 전문가가 정기 점검을 해 주니 안전하다고 믿기 쉽지만, 치키 라피키 역시 차터로 운영되던 배였습니다.
그런 위험이 내재 되어 있는 중고 배를 구매하자마자 먼 바다로 끌고 나가는 일은 너무 위험한 일인 것 같아요. 대서양이나 태평양은 한국 바다와 다를 뿐더러, 바다에서는 언제나 예상 밖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험할 때는 정말 배를 믿고 버텨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내 배를 잘 모르는 상태라면 일단 멘탈 유지하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이 어떤 루트를 항해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 역시 내가 같은 루트에서 안전할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선원들도 돌발 상황에 대응할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상황의 항해 경험을 함께 한 '내가 잘 아는 배'로 먼 바다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운전 실력을 높이려면 일단 차를 사는 게 맞지만, 요트를 배우기 위해 꼭 배 먼저 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배에 타며 실력을 쌓다가, 배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되고 본인에게 맞는, 그리고 배에 대한 생각도 뚜렷해졌을 때 구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한국 상황에 맞는 세일링 방법, 선종, 스타일 등 도움이 될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같은 유럽에서도 지중해 배와 북유럽 배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중해에서는 따뜻하고 가까운 바다에서 세일링 자체를 즐기려는 수요가 많기 때문에 가볍고, 빠르고, 데크에서 햇볕을 즐기며 드러누울 실외 공간이 넓은 배들이 인기가 많습니다. 같은 배로 북유럽에서 항해를 하면 추위와 날벌레에 시달리고, 거친 바다에서 넓고 평평한 데크는 위험하기도 합니다.
한국 역시 동.서.남 해안의 환경이 다른 만큼 어떤 지역에서 어떤 항해를 할 것이냐에 따라 적합한 배의 종류가 달라지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바람을 이용해 세일링을 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과 좀 느리더라도 실내가 넓고 편안한 크루즈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배 역시 달라지기 때문에 본인이 좋아하는 항해 스타일이 무엇인지 역시 고려할 요소입니다.
경험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다도해와 한려수도가 세일링 하기 좋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 해안선이 복잡해서 피항할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파도가 높지 않고 아름다운 경관에 물이 상대적으로 깨끗한 점이 좋더군요. 가까운 거리에 다양한 섬이 있고, 그보다 좀 먼 거리를 항해하고 싶으면 분위기를 바꿔 일본에 다녀올 수 있는 입지도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서울과 거리가 멀어 휴가가 자유롭지 않은 문화가 걸림돌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사진 : B yachts (B60) 에서의 (우) '이지세일링' 님 


긴 인터뷰 질문에 하나하나 의미 있는 답변으로 응해주신
이지세일링-Easy sailing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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