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조계산 야생차와 보리밥 (240803-1)


조계산 야생차와 보리밥


김일하-발로뛰는 문화유적 답사기


입추가 지났으니 조금만 더 지나면 가을이다. 날씨도 선선하거니와 나무들이 형형색색 물드는 계절이라 산을 잘 찾지 않는 사람들마저도 어떤 이끌림으로 산으로 향하곤 한다. 혼자서도, 친구와 혹은 가족과 함께 단풍을 찾아서 근처의 산으로 나가기 좋은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산행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것이 먹거리다. 지리산 천황봉 아래 장터목 대피소에서의 먹방을 보고는 누군가 그랬다. “세상의 모든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높은 산장까지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수고롭게 여기지 않고 찾아와서는, 삼삼오오 둘러 모여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음식이란 산 아래 사람들은 모르기에 기어이 이곳까지 가지고 올라오는 것이 아닐까!
그에 반해 순천 선암사와 송광사을 이어주는 ‘굴목재’ 아래는 그러한 수고로움 없이도 천상의 맛을 볼 수 있다. 몸뚱이 하나만 이끌고 오를 수 있다면 최대의 진수성찬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남해 금산 산장, 경주 남산 비빔밥집과 더불어 전국 산객에게는 소문이 자자한 산 위의 밥집이 있다.



선암사를 지나 조계산 장군봉 정상을 오른 후 내려오는 길에 허기를 채우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혹은 송광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에 밥을 먹고 선암사로, 혹은 조계산으로 다시 등산을 시작하는 중간 정도의 길목으로 산객들에게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두 곳이 영업하고 있으며, 하나는 원조이고 또 하나는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중에 생긴 집으로 너른 마당과 큰 느티나무를 울타리로 해서 자리하고 있다.
다들 산길 중에 먹는 밥이라 그런지, 서둘러 먹고 다시 길을 나서야 해서인지 아니면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식사한다.

주메뉴는 보리밥이다. 그리고 반찬을 안주 삼는 막걸리 한 사발이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 구수한 된장에 장아찌로 담가진 산나물, 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와 고추가 여름이면 입맛을 돋우고, 겨울이 되면 원기를 보충해 준다.
한 그릇 먹고 나면 ‘행복이 별거 있나, 이게 행복이지’ 하며 함포고복(含哺鼓腹)하게 된다.

조계산은 사시사철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선암사(http://www.seonamsa.net/) 방향 등산로는 정비가 잘되어 있는 편이라 누구 할 거 없이 많이들 선호하는 길이다.
절의 입구까지는 산책하듯 걸어갈 수 있고, 또 걸으며 보는 주변 경관은 특히나 ‘예술’이다.

선암사 입구에서 너른 길을 한참 가다 보면 작은 개울이 나오고, 또 이 개울을 넘기 좋게 아치형 다리가 높아져 있다. 이 다리가 보물로 지정된 선암사 승선교이다. 이 아치형 다리 아래에서 강선루 방향으로 찍는 사진 한 컷, 전국에서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이면 찾아오지 않을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 선암사 승선교

이 선암사는 통일신라시대 선과 함께 차가 보급된 곳으로 야생 작설차가 유명한 지역이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명실상부 전라남도의 대표 사찰이라 할 만하다. 이런 선암사는 승선교와 대웅전을 비롯해 총 9개의 보물과 8개의 유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사적 및 명승을 가진 임제선풍의 천년고찰 태고총림이다.


▲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의 풍광은 사계절 언제나 좋은 곳이다. 1년이 다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최고를 뽑으라 하면, 그 시작은 봄일 것이다. 봄이면 경내에 봄을 알리는 선암매가(200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 600년간 담아온 향기를 뿜으며 계절을 가득 채운다. 매화가 지고 겹벚꽃이 못다 뽐낸 봄옷의 매무새를 나무 한가득 매달아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흩날리며 주변을 떠돈다.
그리고 봄인가 싶어 바닥에 깔리는 벚꽃잎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봄은 화려하듯 쓸쓸하게 쉬 지나가며 다른 계절에 그 자리를 내어 준다.


▲ 선암매

선암사는 특이하게 ‘뒤칸’으로 유명하다. 기회가 되고 생각이 동한다면 한 번쯤 선암사‘뒤칸’에서 일을 시도해 본다면 왜 이곳이 ‘뒤칸’으로 유명한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비슷한 곳으로, 현대식이지만 산청 수선사에도 이러한 곳이 있다. 비교해 생각해 보면 둘이 견주어 어느 하나 모자라는 것은 없지만, 산청 수선사 ‘뒤칸’은 선암사 ‘뒤칸’의 예스러움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 아닐지 생각한다.

눈으로 한껏 취한 후 우측 대각암 방향으로 등산을 시작한다. 조금 오르다 보면 마애불이 떡하니 우리를 내려다보고, 대각암옆 작은 길로 등산을 시작한다. 장군봉을 오르는 최단 코스로 중급자 수준으로 2시간이면 조계산 정상 장군봉(888m)에 다다를 수 있다. 이전에 운수암을 지나 소장군봉을 거쳐 장군봉을 오르기도 했으나 지금은 거의 다니는 사람이 없다. 다른 방향은 선암사를 나와 삼인당 연못을 우측으로 부도전을 지나는 길과 아래 임도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이 방향은 송광사로 넘어가는 옛길로 부도전의 등산로는 작은 굴목재에 이르고, 임도를 따라 편백나무 숲을 지나는 길이 큰굴목재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천년불심길로 송광사까지 4시간 가량 걸린다. 선암사에서 큰굴목재까지는 대략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굴목재를 지나 한참을 오르면 송광사 방향과 천자암 방향으로 등산로가 나뉜다. 천자암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다. 그것도 천년을 이겨내고 두 나무가 뒤엉켜 용트림을 하듯 휘감아져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이다. 부부처럼, 가족처럼 그렇게 의지하면 천년을 견뎌온 쌍향수다. 그 크기도 놀랍거니와 뒤틀린 듯 감겨 올라가며 가지를 아래로 늘어트린 모습은 신비롭기만 하다. 이 암자는 송광사에 속한 암자로 곱향나무 하나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이다.
얼마전 가보니 암자 앞까지 도로가 잘 포장이 되어있어 차로 편히 올라갈 수가 있다.


▲ 천자암 쌍향수
( https://www.instagram.com/reel/CuZkIBqJX7p/?igsh=MWZobjd6MXVxYm1xNA==)

조계산을 오르다 보면 간혹 돌무지를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조계산의 선암사와 송광사에서 운영했던 숯가마가 있던 자리이다. 선암사에서 운영하던 숯가마는 산 전체를 31개 구역으로 나누어 매년 한 골짜기씩 돌아가면서 숯을 구웠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송광사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 선암사 삼인당

여기 순천 조계산은 골짜기마다 물이 넘쳐나고, 골마다 나무가 무성하며, 두 절은 보물로 가득하다. 찾아오는 이를 위해 보리밥을 차려주는 정성이 맛으로 배어 나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입안에는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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