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 나는 그런 마음으로 또 지리산을 가게 될 것이다)
김일하-발로 뛰는 문화유적 답사기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12월은 놀랍고, 불안하고, 안타까운 일마저 일어나, 불안한 마음으로 한해를 정리하는 둥 마는 둥 한 것 같다. 그런 상황 그대로 새해를 맞이하다 보니 무언가 마무리를 못 한 기분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희망을 안고 좀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산으로 간다.
가장 빠른 새해를 맞기 위해 강원도로, 멀리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근의 높고 낮은 산, 가릴 것 없이 저마다 희망을 품고 찾아가 오른다.
새해 해맞이 장소로 사람들이 오르고 싶은 산 중 가장 높은 산이 지리산이다. 지리산 일출은 보기 어려운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얼마나 보기 어려우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다. 하물며 새해 첫날이라 한다면 3대가 아니라 10대 정도는 덕을 쌓아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시간이 허락한다면 새해 첫 일출을 지리산 천왕봉에서 맞이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으나, 올해는 출근이라 사람들이 올린 인스타에서 그 장엄함을 맛볼 수 있었다. 역시나 많은 사람이 정상에 가득했고, 저마다 소원을 빌며 새해를 시작하는 모습은 부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른 새벽 추위를 이기고 산에 오른 이들의 부지런함에 경의를 표한다.
지리산 국립공원은 1967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경남의 하동, 함양, 산청 그리고 전남의 구례와 전북의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483.022㎢의 넓은 면적을 지닌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둘레가 320여km나 되는 지리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 개 능선들 사이로 계곡이 자리하고 있다. 한반도의 지리산을 기준으로 동과 서 같은 듯 다른 문화를 가진 영남과 호남이 만나 단순히 크다, 깊다, 넓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출처:지리산국립공원 https://www.knps.or.kr/front/portal/visit/visitCourseMain.do?parkId=120100&menuNo=7020100)
내가 가본 지리산은 중산리 코스와 노고단코스, 화대종주로 요즘 산이 좋아 산을 타는 사람이 본다면 하수 중의 하수이다. 그리고 대학 시절 지금은 사라진 뱀사골 산장을 통해서 반야봉까지 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때 한여름 뙤약볕에 오르는 길은 고행의 길이었고 반야봉 산 위에는 얼마나 많은 잠자리가 있었던지. 최근에는 여름 천왕봉에 오르니 각다귀 같은 작은 벌레들이 많아 당황스러웠었다. 지구 환경 변화 때문인가? 라는 생각을 해봤다.
내가 주로 오르는 중산리 코스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힘든 길이지만 가장 빨리 천왕봉으로 오를 수 있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높고 깊은 산의 풍광은 사계절 항상 새롭다. 중산리 탐방로에 주차하고 일부 사람은 순두류까지 버스를 이용해 오르기도 하지만, 나는 한번도 버스를 타고 오르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지리산에 대한 나름의 고집이랄까! 탐방로를 조금 걷다 보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그 바로 앞 부터가 지리산 중산리 코스의 시작이다. 왼편으로는 계곡이고, 오른편은 캠핑장이었지만 최근 자연 탐방로로 바뀌었다.
한참을 오르다 보면 칼바위가 나오고 거기서 다시 계곡 출렁다리를 건너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왼쪽은 계곡을 옆으로 지나 유암폭포 그리고 장터목산장까지 오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가파른 경사를 한 시간쯤 올라야 하는 ‘악’ 소리 나는 코스이자 로터리 산장과 법계사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나는 한두 번 제외하면 전부 로터리 산장으로 길로 올랐다. 빠르기도 하지만 내려올 때 계곡에서 시원한 세수를 할 수 있는 맛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계단 그리고 또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탁 트여 보이는 풍광 속으로 천왕봉이 들어온다.
로터리부터는 올라온 만큼 높이의 계단을 다시 올라야 갈 수 있다. 로터리 산장은 순두류에서 올라온 사람과 나처럼 중산리를 통해 올라온 사람들로 많이 붐비는 곳이다. 산장에서는 간식을 즐기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아니면 화장실을 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천왕봉을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베이스캠프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법계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암자로 알고 있는데, 깊은 산속 암자치고는 그 사세가 대단한 편이다. 입구에 일주문을 지나 잘 정리된 길을 휘어지며 오르다 보면 왼쪽에 법당과 오른쪽으로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으며, 뒤로 난 계단을 천천히 따라 올라가면 우측으로 큰 바위 위로 고려시대 만들어진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있다. 그 바위 뒤로는 시원하게 목을 축여줄 약수까지 나오고 있으니 등산하는 이들이 이 길을 들러 산을 오를 만도 하지만 천왕봉만 생각하며 오르다 보면 이곳을 스치듯 지나는 이가 대부분이다.
또 식당 앞에는 일제 강점기 법계사 혈맥을 끊기 위해 일제가 박았다는 쇠말뚝도 전시되어 있다. (내가 이 장소를 식당으로 기억하는 까닭은, 스님의 배려로 딱 한 번 안쪽서 식사했던 적이 있어서이다.)
법계사를 나와 옆으로 크게 돌아 다시 등산을 시작하면 시야가 트이고 사방이 발아래 펼쳐지는 그림 같은 경치가 산을 오르는 내내 이어진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큰 나무는 사라지고 천년을 산다는 주목 나무도 이제는 죽어 가지만 앙상하게 보인다, 그리고 또 조금더 오르면 그것조차 없어지고 하늘에 닿을 듯이 가파른 계단을 만나고, 그것도 오르면 만나는 곳 바로 그곳이 지리산 천왕봉이다.
사방이 일망무제요 저 멀리 남해가 보이고, 내 살고 있는 진주, 하동금오산, 무주의 덕유산, 합천의 황매산이 굽이치듯 펼쳐진 정상의 풍광은 보는 이가 누구든 감동일 것이다.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고,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잡념은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정상 주변 돌에는 한자로 적은 이름이 즐비하다, 아마도 오기 힘든 곳에 누가 왔다 같다며 흔적을 남기는 것은 지금이나 옛사람이 모두 비슷한 모양이다.
얼마 전 ‘지리산’ 정산 근처 바위에서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는 글이 발견되어 이목이 쏠린 적이 있다. [이런뉴스] “피 토하고 울음 삼키며…” 지리산에서 발견된 392자의 독립 염원 / KBS 2024.08.14.
100년 전 조상들은 독립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 이곳까지 올라와 그 결심을 바위에 깊이 새겨놓았다.
최근 인스타를 보면 아흔 넘으신 어르신이 천왕봉을 올랐다는 글, 생애 천왕봉을 700번 이상 등반한 여든 넘은 어르신, 하루 3번을 오른 사람 이야기 등, 다양한 사연 속 지리산 천왕봉에 등정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지리산 천왕봉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이나 용기를 주거나 알 수 없는 어떠한 감동을 주는 산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내려갈 때는 바윗길과 가파른 계단을 따라 통천문을 지나며 운무를 헤치고 나가다 보면 제석봉에 이른다. 이 제석봉의 큰 주목은 오랜 세월 비바람과 폭설에 넘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그래도 2세목은 잘 자라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천년만년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 제석천 바로 아래가 장터목 산장이다. 이전 이곳에서 장이 열렸다 해서 ‘장터목’이라고 하는데, 산이 깊어 호랑이나 반달가슴곰 같은 맹수 그리고 산도적도 있었을 터인데 이곳까지 올라와서 장이 열렸다니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곳에 자리한 장터목 산장은 현재 등산객의 무거운 짐을 받아주고 또 음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옛 장터와 같지는 않아도 산객들의 온갖 음식이 한자리에 펼쳐지는 모습이 옛 장터를 상상케 한다.
예전 방송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에 국립공원 장터목 관리자 말로는 장터목에서는 회에서부터 한우, 파스타까지 생각하는 모든 음식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혼자 산을 다니기에 여럿이 모여 산에서 한 상 차려준 성찬을 즐기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장터목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유암폭포를 향해 서둘러 내려가게 된다.
여름과 달리 겨울은 골이 깊어 해가 일찍 진다. 비록 아는 길이라도 해가 지면 찾는 것이 쉽지 않기에 서두를 수밖에 없다.
유암폭포는 이름처럼 큰 바위에 비단처럼 내리는 폭포로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여름은 초록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보여주는 그림 같은 경치가 항상 감동적이다. 여기서 세수도 하고 손도 씻고, 발이라도 담그고 있으면 오늘 등산 피로가 한 번에 사라진다.
그렇게 내려오는 길은 발도 가볍고, 기분도 상쾌하다. 그리고 쌓였던 스트레스는 지리산에서 풀어놓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향할 수 있다.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모든 사람이 앓고 있는 일상의 스트레스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일상의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위로가 필요하다. 내 가족, 나의 친구로부터의 위로, 만약 그것도 어렵다면 자신에게라도 스스로 위로를 해주었으면 한다. 산뿐만이 아니고 바다라도 가서 소리 질러 보자! 올해 분명 좋아질 거라고, 행복해질 거라고. 나는 그런 마음으로 또 지리산을 가게 될 것이다.
지리산이 워낙 크다 보니, 그 골짜기에 자리 잡은 유명한 절 또한 많다. 구례 화엄사, 천은사, 남원의 실상사, 백장암, 산청의 쌍계사와 연곡사, 함양의 벽송사, 중산리 천왕봉 아래 바로 자리한 법계사와 화대 종주의 끝에 있는 대원사가 그곳이라 하겠다.
지리산을 즐기는 방법은 경상남도, 전라남북도의 지리산 5개 시군을 잇는 289.4km(2021년기준) 지리산 둘레길 21개의 구간 지리산 둘레길 완보 인증이나 (완보순례자 – 생명평화 지리산둘레길), 화엄사에서 출발 대원사까지의 화대종주(약46KM), 화엄사에서 중산리까지 화중종주(약42KM) 인증도 해볼 만하다. (참여안내 < 지리산종주인증제 | 구례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