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일기는 레이싱 요트 M1이 뉴질랜드 오푸아 마리나를 출발해 뉴칼레도니아를 거쳐,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추크 제도(트럭 섬) 웨노섬, 사이판, 일본을 지나 제주도를 거쳐 목포항에 입항하기까지의 전 일정을 담은 기록이다.
뉴질랜드에서 목포까지 50일간 태평양 약 10,230km, 5,522해리를 종단한 항해였다.
항해 중에는 기본적인 해상 거리 계산과 항해술 그리고 입출항 시 필수적인 C.I.Q(Customs: 세관, Immigration: 출입국관리, Quarantine: 검역) 절차들도 직접 경험하고 수행해야 했다.
이 기록에는 그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담고자 했다.
‘종단’은 ‘횡단’과 달리 여러 계절을 모두 겪어야 하는 항해였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통과해야만 했다.
2018년 10월 17일 수요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북경을 경유하고, 다음 날인 10월 18일 새벽 1시 20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출항 허가가 지연되면서 뉴질랜드에서 약 10여 일 머무르게 되었고, 11월 1일 거친 날씨를 무릅쓰고 태평양으로 출항하게 되었다.
항해 중 많은 자연의 장면들과 마주했다. 뉴칼레도니아 인근 화산이 터져 용암이 흐르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적도 근처에서는 두 번의 저기압을 통과하며 거대한 기압의 내부를 경험했다. 세 차례의 태풍 속에서 요트가 옆으로 기울며, 요트의 중간 지점까지 바닷물이 차올랐고, 결국 요트는 고장 나 태풍 속에서 표류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가 있던 해역이 GPS 음영 지역이었고, 한국에서는 우리의 연락이 끊기자 혹시나 우리가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 걱정하는 분들도 계셨다고 들었다.
다행히 우리는 태풍과 산처럼 솟구치는 파도를 무사히 통과해 웨노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요트를 정비한 뒤 사이판으로 향했고, 빗속을 항해해 새로 합류한 일행을 만났다.
찢어진 세일을 수리하고 일본으로 출항했으나, 잦은 고장과 부품 부족으로 항해가 어려워졌다. 일본 해경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자국 배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결국 한국에서 일본 지인을 통해 헬기로 부품을 받아 수리했고, 한국으로의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겨울철 한국의 강한 고기압과 바람 그리고 고장 난 엔진 탓에 여러 차례 표류를 거듭해야 했다. 제주도 인근에서 해경의 안내를 받아 전남 진도군 서망항에 잠시 머문 뒤 마침내 목포항으로 향했고, 가족과 동료들이 기다리던 항구에 늦은 저녁 도착했다.
C.I.Q 절차를 마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50일간의 힘들고 고된 여정을 마치고 태평양 종단 항해를 완주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항해였지만, 우리가 대한민국 최초로 이 긴 태평양을 종단했다는 사실에 가슴 깊이 뿌듯함이 밀려왔다.
■ 1일차 : 2018년 10월 17일(수) 뉴질랜드로 출발 (오후 4시 14분, 대한민국 → 북경)

애초 10월 중순 이전에 저렴한 항공권을 구해 출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함께 가는 분 중 한 분의 여권이 만료되어, 새 여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싼 비행기표를 찾아 헤맸다.
일본을 경유하는 항공편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티켓을 찾다가 결국 북경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은 환승이든 체류든 자정을 넘기면 무조건 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직접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여권이 만료된 분은 기존 여권에 유효한 중국 비자가 있어서 그분만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비자를 받기 위해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 빌딩에 있는 중국비자신청센터에 모이기로 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고, 충남 보령에서 올라오신 박종보님이 제일 먼저 도착해 1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이어 팀 탄도파 요트클럽 회장님 그리고 서울 영등포구에서 대한해체산업개발(주)를 운영하시는 김정대님도 각각 도착했다. 우리 넷은 개장 시간에 맞춰 2층으로 올라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신청센터로 향했다.
아침부터 많은 인파가 몰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비자 신청은 점심 무렵에야 끝났다. 신청비는 1인당 5만 5천 원이었는데, 박종보님은 본인의 비용을, 나머지 인원의 비용은 회장님이 부담해 주셨다. 여권은 신청 후 1주일 뒤 접수증만 있으면 누구나 찾을 수 있다 하여, 근처에서 일하는 김정대님이 우리 모두의 여권을 찾아와 이후 모임 때 전달해 주셨다.

싸기만 한 항공편을 고집하다 보니 시간도 길어지고 절차도 복잡해지고 결국 비용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북경 공항에선 라이터까지 전부 압수당하는 일까지 겪었다.
우리는 10월 17일(수) 오전 11시 인천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10시쯤 도착했는데, 역시나 가장 먼 곳에서 오신 박종보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일행들이 하나둘 모였고, 한 분은 걱정되는 마음에 부인께서 배웅까지 나오셨다.

또한 경기도 수원에 있는 엔트리연구원의 김진수 상무이사님도 공항까지 배웅을 나오셨다.
그는 각자 사용할 수 있도록 랜턴을 선물로 나눠주셨고, 근처 맛집에서 식사도 대접하고 싶어 하셨지만, 회장님은 시간 관계상 사양하셨다. 항해 중 랜턴이 부족한 상황이 많았는데, 김진수님의 선물은 정말 유용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내부로 들어갔다. 검사대를 통과해 공항 안으로 들어서니 면세점들이 즐비했다. 우리는 입장 전에 받은 할인쿠폰을 활용해 담배 등을 구매하려 했는데, 여러 장을 내밀자 직원이 한 사람당 한 장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만 원 할인권 하나만 쓸 수 있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매장별로 나눠 샀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간단히 샌드위치와 주스를 마시고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운 후 탑승구로 이동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북경행 비행기는 원래 오후 2시 40분 출발 예정이었지만 연착되어 오후 4시 14분에야 이륙했다.

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식이 나왔다. 닭고기와 불고기 중 나는 불고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자 불고기가 떨어졌다고 해서 기다렸더니, 잠시 후 승무원이 미안하다며 자신들 식사용 불고기를 내주었다. 오히려 일반 기내식보다 더 맛있었다.

기내식과 음료에 만족하며 오후 5시 55분에 북경에 도착했다. 시간이 여유 있어 자금성을 구경하기로 했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공항 셔틀 열차를 타고 이동한 뒤 공항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중국의 흡연구역은 칸막이 대신 인도 바닥에 줄만 그어져 있었다.

안내소에서 자금성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확인하고,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하지만 자금성은 공항과 꽤 멀었고 날도 어두워져 결국 창밖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자금성을 지나 식당에 들어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술을 판매하지 않는 식당이었기에 한 분이 면세점에서 산 위스키를 꺼내 나눠 마셨지만, 직원이 제지했다. 술을 다시 가방에 넣고 식사를 마쳤다.

공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건너려는데 젊은 여성 두 명이 길가에서 포옹과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공산국가인 중국도 이젠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원래 정류장에는 공항버스가 없었고, 결국 한참 헤매다 도로 안쪽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공항 도착 후 흡연구역에 들어가 보니 곳곳에 라이터가 버려져 있었다. 이유를 몰랐지만, 몇 개를 챙겨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분이 사라져 당황했다. 결국 그분은 먼저 출국심사 줄에 서 있었고, 다행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출국 검사대에서 오랜 항해를 위해 준비해 온 비싼 라이터를 별다른 설명 없이 압수당했다.
가스를 빼면 안 되겠느냐는 요청에도 검사원은 무뚝뚝하게 응하지 않았고, 항의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공항답지 않은 불친절한 태도에 기분이 상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결국 그대로 검사대를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왜 흡연구역에 라이터를 버리고 갔는지 이해했다. 괜히 공항 밖으로 나갔다가 애써 챙긴 것들을 잃게 된 셈이었다.
탑승구로 가서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데, 조금 늦게 온 일행 한 분이 위스키 두 병을 압수당했다고 했다. 환승객이고 한국 면세점에서 구매한 것이라 항의했지만 출국 심사대 안으로는 반입은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자리에서 위스키를 마시다 다 못 마시고 들어오셨다고 했다. 위스키가 아까우니 같이 나가서 마시자고 했지만, 우리는 긴 비행을 앞두고 있어 거절하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 2018년 10월 18일(목) ( 새벽 1시 20분 북경→뉴질랜드: 오클랜드 )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해 맛있는 기내식과 와인을 여러 잔 마시면서 한국 드라마도 보면서 뉴질랜드로 향했다.
< 다음편 : 뉴질랜드 입국과 첫날 여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