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기) 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 -13

- 크레이그씨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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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넘은 50일의 기록 –13

요트 항해사 - 최 성 진(崔成鎭)

크레이그씨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
(RPM은 치솟고, 계기판은 위험 수위로 올라가며 전원까지 꺼졌다)


■ 10월 29일(월) 해 뜨고 비 오고 반복 = 체류 12일 차 (요트 생활 6일)

<샌드플라이와의 전쟁, 그리고 다시 엔진… 파란만장한 뉴질랜드 12일 차>


오전 2시 30분(현지시간 6시 30분), 휴게소에서 기상했다. 뉴질랜드에 온 첫날 샌드플라이에게 물린 자국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요트에서 자는 동안 매일 밤 공격받아 다리는 점점 더 부어오르고, 급기야 고름까지 흐를 지경이 됐다. 통증은 다리에서 척추까지 번졌고,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도 못 이뤘다. 서울에서 가져온 버물리를 부지런히 발랐지만 소용 없었다. 항해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꾹 참았지만,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 모습을 본 박종보 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챙겨온 항생제를 건네며, 부족하면 감기약에도 항생제가 들어 있으니 먹으라고 권했다. 멀미약, 이질약, 버물리, 감기약 정도만 챙겨온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며 소화제, 항생제, 연고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급하면 여행자보험으로 병원에 가면 되지’라는 생각이었지만, 마리나 안에는 병원도 약국도 없었다.

요트 밖을 보니, 전에 봤던 영국 부부의 요트보다 더 크고 웅장한, 길이 약 100피트짜리 요트가 새로 정박해 있었다.


▲ 100피트 요트. 세일을 펼쳤을 때 어떤 모습일지... 속도는 어떨지 궁금했다.

오전 5시 20분, 요트 연식이 오래돼서인지 선실 천장의 해치(환기·채광·비상 탈출용 덮개문)에서 물이 새는 걸 발견했다. 김정대 님과 함께 낡은 실리콘을 제거하고 새로 방수 작업을 했다.
5시 40분에는 크레이그 씨와 전기 기술자가 와서 전기 도면을 확인하며 엔진 이상과 ON/OFF 스위치 변경 작업을 마쳤다. 그들은 비상용 임펠러(해수를 퍼올려 엔진을 식히는 펌프의 핵심 부품)와 휴즈도 건네주고 오전 7시 40분에 요트를 떠났다.

그러나 8시 15분, 다시 요트에 문제가 생겼다. 엔진이 갑자기 꺼지고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엔진룸을 열어 작은 밸브를 조작해 간신히 시동을 걸었지만, 스톱 버튼이 작동하지 않았다. RPM은 1500까지 치솟고, 계기판은 위험 수위로 올라가면서 전원까지 꺼졌다. 우리는 부랴부랴 크레이그 씨에게 연락했고, 그는 식사 중이라며 전기 기술자와 함께 곧 오겠다고 했다.


▲ 뉴질랜드 기술자, 크레이그씨와의 마지막 만남
오전 9시 40분, 다시 요트를 찾은 크레이그 씨와 기술자는 지난번에 두고 간 연장을 먼저 챙기더니 그 도구로 꼼꼼히 점검을 이어갔다. 결국 엔진 뒤쪽의 큰 플러그가 엔진 진동으로 살짝 빠진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를 고정하자 오전 10시 30분경 모든 수리가 끝났다. 기술자는 연장을 정리하며 “이 도구들이 제 밥줄”이라며 소중히 챙겨갔다. 이것이 크레이그 씨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는 요트 수리 때마다 매번 손을 다쳐 항상 피를 조금씩 흘릴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 박종보 님의 조촐한 생일파티(1)

요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자 우리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특별한 일정 없이 요트에서 쉬다가, 저녁에는 김정대 님이 초코파이로 만든 작은 케이크를 준비해 박종보 님의 생일을 조촐하게 축하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 박종보 님의 조촐한 생일파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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