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4시(현지시간 8시)에 일어났다. 어젯밤, 창가 쪽 침대에서 주무시던 분께 모기나 벌레가 들어올 수 있으니 창문을 닫아달라고 부탁하고 잤는데, 아침에 보니 창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오른쪽 발등이 가려워 확인해보니 좁쌀만 한 검은 벌레 몇 마리가 방 안을 날고 있었고, 발등엔 모기 물린 자국 같은 붉은 반점이 여러 개 생겨 있었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것이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니, 그 벌레는 모기가 아니라 ‘샌드플라이’라는 악명 높은 벌레였다.
오전 6시, 게스트하우스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오푸아 마리나로 향했다.
오늘은 M1 요트를 점검하고 계약 관련 협의를 위해 요트의 주인 크레이그 씨, 딜러인 그렘 씨 그리고 현지 크루 두 명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우리는 함께 요트에 올라 계류장을 벗어나 바다로 나갔다.

이에 크레이그 씨가 워터 발라스트 한쪽에 물을 채우고, 모든 사람을 한쪽으로 모이게 해 요트를 기울이자 그제야 킬이 바닥에서 빠지며 요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에서 볼 땐 몰랐지만, 밖에서 바라보니 마리나는 꽤 규모가 크고 정박된 요트 수도 훨씬 많아 보였다. 주변에는 무어링(Mooring. 정박) 중인 요트들도 많았고, 개인 선착장있는 별장같은 집에도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요트 성능 점검을 위해 집세일(Jib Sail)과 메인세일(Main Sail)을 올렸다. 함께 탑승한 현지 크루는 매우 노련했고 민첩했다. 택킹(Tacking. 바람을 앞에서 받으며 방향을 바꾸는 행위)과 자이빙(Gybing, Jibing. 바람을 등진 상태에서 방향을 바꾸는 행위)을 몇 차례 시도하며 요트의 상태를 점검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크레이그 씨가 이제 돌아가자며 요트를 계류장으로 돌렸다.
그때 김정대님이 아쉬운 듯 회장님께 마지막으로 스핀세일(스피니커 세일 약칭)을 테스트해보자고 제안했다. 회장님이 크레이그 씨에게 요청하자 처음엔 거절했지만, 결국 제네이커 세일을 걸어 다시 세일링을 시작했다. 런닝(뒤에서 부는 바람) 조건에서 바람은 약했지만 요트는 미끄러지듯 속도감 있게 나아갔다.
테스트를 모두 마친 우리 일행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마리나로 향했다.

선착장에는 바다까지 이어지는 사다리도 설치돼 있어 물에 빠져도 사다리를 이용해 올라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계류장에 요트를 접안 뒤 우리는 요트 위에 앉아 크레이그 씨, 그렘 씨, 회장님 그리고 통역을 맡은 변호사님과 함께 장비 및 조건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다. 회장님은 메모한 요구사항을 하나씩 큰 소리로 설명했고 변호사님이 이를 통역했다.
그렘 씨는 회장님과 크레이그 씨 사이를 중재하며 일부는 수용하고, 일부는 거절하는 방식으로 협의를 이어갔다.
그러나 회장님이 거절될 때마다 농담처럼 웃으며 한국말로 욕을 섞어 말하자 크레이그 씨가 순간 정색을 하며 “한국어는 몰라도 그 말이 욕이라는 건 알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잠시 기분을 전환한 뒤 협상이 재개되었으나 크레이그씨는 계속되는 요구에 다소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회장님은 요트에 필요한 장비와 낡은 연장들까지 요구했고 이에 크레이그씨는 연장이 오래되고 쓸만하지 않다고 했으나 회장님은 괜찮다며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크레이그씨는 자신의 공장에서 가져가라고 수락했다. 그러나 추가 요구가 이어지자 크레이그씨는 화가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 새 배를 사는 게 아니다!”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렘씨가 분위기를 달래며 협상을 이어가려 했지만, 크레이그씨는 가족과의 약속을 이유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중도금을 현금으로 주려 했으나 현지 법상 은행 계좌를 통해서만 송금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송금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하며 협상을 마무리하고 계약서에 서명했다. 중도금은 추후 송금하기로 하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후 크레이그씨와 그렘씨는 돌아갔다.
크레이그 씨가 몇 차례 가족 약속을 강조한 것을 보며, 이곳 사람들은 가족과의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인조 미끼를 이용해 낚시를 시도했지만 물고기 반응이 없자 박종보님이 미끼를 바꿔야 한다며 바위에서 석화(굴)를 따와 미끼로 사용했다.
선착장 초입의 얕은 물 속에는 크고 작은 만타(날개 폭 7m 이상인 대형 가오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대어를 기대하며 굴 미끼를 달고 다시 낚싯줄을 던졌지만 작은 물고기들이 미끼만 따먹을 뿐, 큰 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결국 낚시는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